치매 진단을 받은 후, 온화하고 지혜롭던 부모님이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가족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족을 도둑으로 의심하거나, 공격적인 언행을 보일 때 보호자가 느끼는 배신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것은 부모님의 본심이 아니라 뇌의 질병이 시키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뇌세포의 손상으로 인해 현실을 인식하는 기능이 고장 났을 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치매 환자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3가지 대표적인 문제행동(망상, 반복 질문, 석양 증후군)의 원인을 깊이 있게 알아보고, 서로 상처받지 않으면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는 구체적인 대화 대처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도둑 망상: "며느리가 내 돈 훔쳐갔다!"라고 할 때
초기 치매 환자에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물건 둔 곳을 잊어버리는 것’과 ‘남을 의심하는 것’이 결합된 피해망상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내 기억은 문제없어. 물건이 없는 건 누군가 훔쳐갔기 때문이야"라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가까이에서 돌봐주는 며느리나 배우자가 억울하게도 주된 타깃이 되곤 합니다.
💬 상황 예시: 지갑이 없어졌다고 화를 내실 때
❌ 나쁜 대처 (NG)
환자: "네가 내 지갑 가져갔지? 당장 내놔!"
보호자: "어머님, 제가 그걸 왜 가져가요? 또 잃어버리고 저한테 그러시는 거죠? 정말 억울해서 못 살겠네!"
👉 결과: 환자는 자신의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껴 더 화를 내고, 보호자는 억울함에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 현명한 대처 (OK)
환자: "네가 내 지갑 가져갔지? 당장 내놔!"
보호자: (놀란 표정으로) "아이고, 어머님 지갑이 안 보여요? 그 중요한 게 없어졌으니 얼마나 놀라셨어요."
환자: "그래, 분명 여기 뒀는데 없잖아."
보호자: "누가 잠깐 딴 데 치워뒀나 봐요. 저랑 같이 한번 찾아봐요. 제가 안방 서랍부터 찾아볼게요."
👉 결과: 환자의 불안한 감정을 먼저 '인정'해주면 의심이 누그러집니다. 이때 '함께 찾는 시늉'을 하다가, 미리 준비해 둔 비상금을 발견한 척 건네거나 간식을 드리며 주의를 돌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Tip: 중요한 물건은 미리 여분을 준비해 두거나, 환자가 물건을 자주 숨기는 '비밀 장소(장롱 깊은 곳, 냉장고 등)'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반복 질문: "밥 언제 주냐"를 수십 번 되물어볼 때
방금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웠는데 "밥은 안 주냐"라고 묻거나, "오늘 며칠이냐"를 1분 간격으로 물어보는 행동은 보호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만듭니다.
이는 단기 기억력의 심각한 저하 때문입니다. 마치 녹음기 테이프가 지워지듯, 방금 들은 대답이나 식사했다는 경험 자체가 뇌에 저장되지 않고 휘발된 상태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밥을 안 먹었고, 정말로 궁금해서 처음 물어보는 것입니다.
💬 상황 예시: 식사 후 또 밥을 찾으실 때
❌ 나쁜 대처 (NG)
환자: "배고프다. 밥은 언제 주냐?"
보호자: "아까 드셨잖아요! 지금 설거지 다 했는데 무슨 소리세요. 자꾸 그러시면 저 화내요!"
👉 결과: 환자는 자신이 밥도 못 얻어먹는 처지라 생각하여 우울해지거나, 보호자가 화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 현명한 대처 (OK)
환자: "배고프다. 밥은 언제 주냐?"
보호자: "어르신, 배가 출출하시군요. 지금 맛있는 밥 짓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또는 과일 조각을 드리며) "기다리시는 동안 요 사과 한쪽 먼저 드셔보세요."
👉 결과: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환자의 요구(배고픔)를 수용하는 척하며 안심시키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 Tip: 주의 환기 전략이 가장 잘 통하는 단계입니다. 질문이 반복될 때, 빨래 개기, 콩 고르기, 화분에 물 주기 등 단순 반복 작업을 요청하면 뇌의 집중 대상이 바뀌어 질문을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석양 증후군: 해 질 녘만 되면 "집에 갈래"라며 불안해할 때
낮에는 점잖으시다가도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오후 5~6시 무렵이 되면 갑자기 안절부절못하거나, 짐을 싸서 "우리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야 한다"며 밖으로 나가려 하는 증상을 '석양 증후군(Sundowning)'이라고 합니다.
어둠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고 사물 식별이 어려워지면, 인지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익숙한 집도 낯선 공간으로 착각하여 극심한 공포를 느낍니다. 또한 치매로 인해 생체 리듬이 깨지면서 저녁 시간에 뇌가 과각성 상태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상황 예시: 저녁에 짐을 싸서 나가려고 할 때
❌ 나쁜 대처 (NG)
환자: (짐 보따리를 들고) "이제 집에 가야겠다. 엄마가 기다려."
보호자: "여기가 집이잖아요! 그리고 어머님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자꾸 그러세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 결과: 환자는 낯선 곳에 갇혔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 현명한 대처 (OK)
환자: "집에 갈래. 비켜라."
보호자: (차분하게 손을 잡으며) "그러게요, 어르신 댁에 가셔야죠. 그런데 지금 밖이 너무 캄캄하고 버스가 끊겼어요."
환자: "그래도 가야 해."
보호자: "오늘만 여기서 주무시고, 날 밝으면 제가 아침 일찍 모셔다 드릴게요. 따뜻한 유자차 한 잔 드시고 텔레비전 조금만 보다가요."
👉 결과: 환자의 목적(귀가)을 부정하지 말고, '지연'시키는 전략을 써야 합니다. 현재 상황(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어 안심시킨 후, 좋아하는 간식이나 TV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 Tip: 해가 지기 1시간 전부터 집안의 모든 조명을 대낮처럼 환하게 켜두세요. 커튼을 쳐서 어두운 창밖이 보이지 않게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불안 증세를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완벽한 간병은 없습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망상과 질문에 성인군자처럼 웃으며 대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때로는 화를 내고 나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책하지 마세요. 그것은 보호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병이 그만큼 고약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호자의 휴식'입니다. 내가 무너지면 환자도 무너집니다.
증상이 심해질 경우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시고, 거주지 관할 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하여 기저귀 등 조호물품 지원을 받으시거나,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여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장합니다. 낮 시간 동안 어르신을 돌봐주는 주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를 활용하여 보호자만의 숨 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이 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건강 정보 안내
본 콘텐츠는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참고용 자료입니다. 치매 증상 및 행동 변화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신경과 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